“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는 줄로 생각하지 마라.”
요즘 우리는 정말 말을 많이 한다.
- 메시지 알림
- SNS 업로드
- 회의와 보고
- 끝없는 의견과 주장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조용히 묻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강조되는 건 기도의 형식이 아니라 기도의 방향이다.
무엇을 먼저 구하는가
기도의 첫 문장은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로 시작한다.
요즘 우리의 하루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되지 않나?
- 오늘 뭐 먹지
- 오늘 성과는 어떻게 내지
- 오늘 어떻게 인정받지
하지만 방향이 정리되지 않은 채 속도만 올리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리게 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얻는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는가”일지도 모른다.
일용할 양식
“오늘 필요한 양식.”
흥미로운 건 내일 것도, 1년 치도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늘 더 많이, 더 멀리 준비하려 한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불안이 기준이 되면 현재를 잃어버린다.
오늘을 사는 힘은 거창한 계획보다 오늘 필요한 만큼의 용기에서 나온다.
- 오늘 하루를 버틸 힘
- 오늘 만날 사람을 대할 여유
-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집중
내일을 통제하려 애쓰기보다 오늘을 성실히 사는 것
그 단순함이 오히려 단단하다.
용서라는 가장 어려운 문장
이 기도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은 ‘용서’이다.
“내가 용서한 만큼 나도 용서받게 해 달라.”
우리는 실수에 대해 이해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타인의 실수에는 쉽게 엄격해진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한다.
미움은 오래 쥐고 있을수록 내 손이 더 아프다.
물론 용서는 쉽지 않다.
억울함도 있고 상처도 있다.
하지만 계속 붙들고 있을지 조금 내려놓을지는 결국 내 삶의 무게를 정하는 문제이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여기서 말하는 유혹은 거창한 범죄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 비교에 빠지는 마음
- 과도한 경쟁심
- 인정받고 싶은 집착
- 편리함을 위해 원칙을 미루는 태도
우리는 매일 작은 선택 앞에 선다.
그 선택이 쌓여 결국 나를 만든다.
기도는 주문이 아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건 무엇을 얼마나 얻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이다.
기도는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한 주문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말을 줄이고,
욕심을 줄이고,
비교를 줄이고,
미움을 줄이는 시간
오늘, 무엇을 줄이겠습니까
혹시 요즘 너무 많은 생각과 말 속에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오늘 하루만이라도 조금 단순하게 살아 보면 어떨까
- 오늘 필요한 만큼만 욕심내고
- 오늘 만난 사람에게 친절하고
- 오늘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 오늘의 미움을 조금 덜어내는 것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용기
어쩌면 그게 가장 깊은 기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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