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삼국지 사마의, 삼국시대의 최후의 승자
2. 사마의의 뛰어난 능력과 야심
3. 사마의의 평가
4. 방송줄거리
삼국지 사마의, 삼국시대의 최후의 승자
사마의는 중국 삼국시대 조위의 관료이자 서진의 추존 황제로, 자는 중달(仲達)이며 하내군 온현(溫縣) 사람입니다.
사마의는 179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야심가였다고 합니다. 20세에 조조의 밑으로 들어가 조조의 신임을 얻어 벼슬이 쭉쭉 올랐습니다. 조조는 사마의를 "천하의 기재"라고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사마의는 군사,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제갈량의 북벌을 7번이나 막아내며 위나라의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조씨 정권을 견제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오나라와의 화친을 통해 위나라의 국력을 강화했습니다.
사마의는 조조 사후 조비와 조예의 시대에도 조씨 정권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조예 사후 조상과 조상 황후의 섭정이 시작되자 사마의는 조상과 대립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결국 사마의는 조상과 조상 황후를 제거하고 조씨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사마의는 251년에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마의 사후 그의 아들 사마소가 위나라를 차지하고 서진을 건국했습니다. 사마의는 서진의 건국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마의의 뛰어난 능력과 야심
사마의는 군사,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제갈량의 북벌을 7번이나 막아내며 위나라의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제갈량은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 평가받는 인물이지만 사마의는 제갈량의 북벌을 모두 막아내며 위나라의 군사력을 입증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조씨 정권을 견제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조씨 정권은 사마의를 견제하기 위해 여러 차례 그를 제거하려 했지만 사마의는 자신의 뛰어난 정치력으로 이를 모두 모면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오나라와의 화친을 통해 위나라의 국력을 강화했습니다. 사마의는 오나라와의 화친을 통해 위나라의 국경을 안정시키고 위나라의 국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사마의는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삼국시대의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사마의의 야심은 그를 삼국시대의 최후의 승자로 만들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씨 정권을 견제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고 결국 조씨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사마의는 자신의 아들 사마소가 위나라를 차지하고 서진을 건국하도록 했으며 서진의 건국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마의의 평가
사마의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그의 뛰어난 능력과 야심은 후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마의는 군사,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며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사마의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줄거리
■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로 조조의 책사 - 사마의
1) 이성원 교수(전남대 사학과)와 떠나는 세계사 여행
2) 매력적인 영웅호걸들의 이야기 < 삼국지>
- 삼국통일이란 조조의 대업을 위해 치열한 전쟁을 이끌었던 사마의
- 재갈량과 숙명의 라이벌전으로 삼국시대 후반부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
3) 배신의 아이콘 '사마의'에 대한 진실
- 조조를 배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핵심 인물
- 천하 통일의 업적을 이룬 사마의 : 위(조조), 촉(유비), 오(손권) → 서진
- 라이벌 제갈량은 뛰어난 지략과 충의의 화신으로 알려진 반면 만년 2인자로 묘사된 사마의
4) 오천년 역사를 지닌 삼국지의 중심 도시 '뤄양(=낙양)'
- 중국 문명의 발상지이자 아홉개 왕조의 수도였던 곳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위 뤄양고성
- 삼국지 악인 동탁이 불태운 후 조조가 재건하여 번성했던 곳
- 두강주의 원조 두강 마을
- 중국의 두 번째 통일 왕조이자 약 400년 동안 번영을 이룬 한나라 후반기 수도였지만 동시 혼란했던 뤄양
5) 삼국시대의 서막 '황건적의 난'
- 중국이 혼란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
- 부패한 관리들과 무능한 황제를 등에 업은 환관들의 권력 다툼 속에서 끊임없이 수탈당하며 고통받은 백성들
. 후한 말기 횡포와 굶주림에 봉기를 일으킨 백성들 * 장각이 일으킨 농민 봉기 '홍건적의 난'
→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두른 농민들이 일으켰으며 삼국시대 개막의 큰 원인이 된 반란
. 장각은 중국 후한 말기의 종교 지도자로 이후 홍건적의 난을 일으킨 인물
- 난세에 등장하는 인물 '영웅'
6) 대혼란 시대!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조조
- 조조가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 공포 정치
. 서주 대학살 : 서주자사 도겸이 아버지를 죽인 것을 빌미로 조조가 서주를 침공해 토벌한 사건
- 무자비한 성격을 가진 조조는 적뿐만 아닌 휘하의 장수들에게도 절대 복종할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조조
- 곁에 둘 인재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
7) 조조가 탐냈던 천하 인재 '사마의'
- 조조가 '사마의'를 만나기 위해 걸린 시간 7년
. 후한 말 조조의 휘하에서 신임받던 정치가 '순욱'과 사마의 형인 '사마랑' 절친인 '최염'이 조조에게 '사마의' 추천
- 한나라를 세운 공신 가문인 명문가 출신이었던 '사마의'
. 군사 책임자 관직명 '사마'를 성씨로 쓸 정도로 대대로 군권과 밀집했던 집안으로 추측
8) 22세 '사마의'에게 관직을 내린 조조
- 지병(풍비=관절염)이 있다는 빌미로 관직을 거절한 '사마의'
. 관직 거절한 경우 중죄에 해당 되나 본인 지병 또는 부모님이 편찮은 경우 관직 거절이 허용 됨
9) 조조를 속이기 위한 7년간의 열연(연기)
10) '사마의'가 관직을 거절한 이유
- '사마의'에게 관직을 내렸을 당시 많은 세력 중 하나일 뿐 완벽한 1인자는 아니었던 조조
-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조조와의 군신관계
. 사마씨 집안이 조조와 정치적 공동체가 되는 것을 우려 함
- 신중하게 시류의 흐름(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변화하는 상황)을 판단하려 한 '사마의'
11) 조조의 두 번째 부름받은 29세 '사마의'
- 후한에 천하 통일을 준비하는 조조
. 손권의 강동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들을 육성 → 전쟁 준비를 도울 인재들을 모집
12) 7년의 기다림, '사마의'에 대한 조조 반응
- 관상(낭고상 =이리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닮은 관상)으로 '사마의'를 경계
- 조조가 경계한 사마의 관상의 숨겨진 비밀
. 낭고상은 이리가 몸은 그대로 두고 고개만 180도 돌려서 뒤덜아보는 모습(몸과 시선이 반대방향)
. 주변을 잘 살필 수 있어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으로 행동과 생각이 다른 것을 의미
13) 생존을 위한 '사마의'의 고군분투
① 끝까지 참는다 ② 안 싸우고 이긴다 ③ 사람 속을 꿰뚫어 본다
14) '사마의' 위나라의 실권자(군부 중심! 권력의 최정점)가 되다
- 40세에 위나라의 태자중 서자와 군사마 직책에 오르다
- 47세에 위나라 군부 4대 장군 중 하나인 표기대장군에 호른 '사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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