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져 봅시다.
우리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잘해 준다.
이건 너무 자연스럽다.
문제는 여기서 멈출 때이다.
-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 나를 오해한 사람
- 나를 불편하게 만든 사람
그 사람들까지 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말은 낯설게 들린다.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은 감정일까, 선택일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그 사람을 좋아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미운 감정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 보복하지 않는 것
- 험담으로 되갚지 않는 것
- 상대를 완전히 지워 버리지 않는 것
사랑은 때로 따뜻한 감정보다 차가운 절제에 가깝다.
세상은 ‘편 가르기’에 익숙하다
요즘 우리는 쉽게 나뉜다.
- 나와 같은 생각이면 우리 편
- 다르면 틀린 사람
SNS, 뉴스, 대화 속에서 선은 점점 또렷해지고 그 선 밖의 사람은 점점 낯설어진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말하는 완전함은 벽을 더 높이 쌓는 것이 아니라
선을 조금 흐리게 만드는 용기처럼 보인다.
해는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떠오르고 비는 가릴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자연은 차별하지 않는다.
그것이 ‘완전함’의 비유로 제시된다.
완전함은 흠 없는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완전함을 실수 없는 상태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완전함은 결점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랑의 범위를 넓히라는 요청처럼 들린다.
- 나에게 유리한 사람만 챙기지 말고
-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만 존중하지 말고
- 나와 닮은 사람만 이해하려 하지 말라는 것
그 경계를 조금씩 넓혀 가는 과정, 어쩌면 그게 성숙이다.
미움은 결국 나를 묶는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계속 떠올리고,
계속 해석하고,
계속 마음속에서 논쟁한다.
하지만 한 발 물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그 사람처럼 되지는 않겠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겠다.”
그 순간, 상대가 아니라 내가 자유로워진다.
오늘, 사랑의 반경을 1cm만 넓혀 보자
원수를 끌어안으라는 거창한 말이 부담스럽다면 이 정도는 어떨까
- 불편한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 나와 다른 의견을 끝까지 들어 보기
- 서운했던 사람을 마음속에서 조금 덜 미워해 보기
사랑은 거대한 감정이 아니라 작은 선택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괜찮다
완전해지라는 말이 혹시 또 다른 부담으로 들리지는 않나?
이 말은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가깝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지만, 조금 더 넓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조금 불편한 사람까지 품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 덜 날카로워질 것이다.
오늘 하루, 사랑의 반경을 아주 조금만 넓혀 보자.
완전함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선택 속에서 자라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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