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아이가 하나 있다. 딸아이는 그 아이를 수민이라 부른다. 사진으로만 봐도 눈이나 피부가 조금은 낯설다. 아마 아이는 한국인 아버지와 남방 계통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낯설어도 이제 흔한 풍경이다.
길거리 풍경도 예전과 다르다. 백인, 흑인, 황색인이 한데 섞여 돌아다닌다. 외국인이라고 힐끔 쳐다보던 시대가 아니다. 공장에도, 대기업의 회의 탁자에도 피부색이 다른 몇몇이 섞여 있다. 한데 섞이다보니 국경 없는 사랑도 자연스럽다. 그 결실이 다문화가정의 자녀 3만명을 잉태시켰다. ‘글로벌’은 이미 우리사회 곳곳에 들어와 있다.
글로벌 시대의 시작을 연 것은 IT(정보기술)다. 사람들은 평생 종이에 편지를 쓰며 살 줄 알았다. 그 믿음을 깬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다. 그는 90년대, 자기가 개발한 PC에 몇 가지 프로그램을 더해 윈도우95를 출시했다. 밤새 모음과 자음을 떼다가 글자를 이어 붙이던 인쇄업자들은 책상마다 낯선 기기 하나씩을 올려놓았고, 너나할것없이 밀려드는 ‘국경 없는 정보의 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클릭 한 번으로 편지가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한 달이 몇 초로 앞당겨졌다. 가히 혁명이었다.
변한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산업 기술이 첨단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상품의 질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문턱이 낮아졌다. 덩달아 시장을 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시장을 보는 눈이 변한 건 기업뿐만이 아니었다. 영화배우, 가수, 프로 스포츠선수들이 외화벌이에 뛰어들었고, 영화와 드라마가 수출되고, 기술 인력이 팔려 나갔다. 고도성장을 이룬 우리를 배우려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해외는 더이상 먼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글로벌 시대를 이끌었던 윈도우PC도 이제는 한물 간 모양이다. 올 6월이다. MS의 경쟁사인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데스크탑PC를 ‘한물 간 농장 트럭’에 비유하면서 데스크톱PC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경쟁사인 MS의 스티브 발머도 주저앉아 구경만 할 수는 없었던지 윈도 운영체계(OS)를 옹호하며 PC시대가 지속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주변까지 두 패로 나뉘어 들고 일어났다. 드림윅스의 제프리 카젠버그 회장은 전통적인 PC시대가 확실히 끝났다며 자신도 노트북 대신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을 사용 중이라고 거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아이패드’는 태블릿PC를 뜻한다. 휴대성과 노트북 기능을 합쳐놓은 신개념의 휴대용컴퓨터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몇 가지 기능만 다를 뿐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또 새로운 것, 낯선 그 뭔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낯선 것을 받아들이며 익숙한 것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일이든 생활이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글로벌 피플이 꼭 갖춰야 할 역량이다. 다문화사회로의 진행도 같은 이치다. 유치원의 수민이는 내겐 아직도 낯설지만 딸아이에게는 그냥 친구다. ‘나’에게 낯선 것이 다음 세대에게는 이미 낯익은 것이 되어 있다. 낯선 것을 대하면 막연함이나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지만, 글로벌 사회에선 그것이 무엇이든 낯선 것에 대한 거부는 생산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
다음으로 기존의 관점이나 틀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를 예로 들면,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이나 사업 모델을 해외로 가지고 나갈 때는 새로운 시장을 독립적으로 분석해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에선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실패하기 십상이다. ‘싸이월드’가 미국에서 실패한 이유는 미국에는 일촌같이 관계 중심의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해?”라고 말하기 보다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다양한 생각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두 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동시에 배우며 자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다. 요즘 TV에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두 나라의 문화를 잇는 통역사이자 가이드라는 광고가 나온다. 이들은 글로벌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사회는 나이와 서열, 선•후배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이런 개념은 팀을 구성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예전에 히딩크 감독은 부임 후 한국 대표팀 내의 선•후배 구분을 없애 밥도 함께 먹도록 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실력과 기여도에 따라 평가했다고 한다.
88올림픽 때, 전 세계인들에게 ‘손에 손잡고’ 하나가 되자고 외친지 꼭 22년이 지났다. 우리가 입고 마시고, 또 생산하는 그 모든 상품들과 새로운 생각들을 함께 나눌 뿐 아니라, 아픔과 기쁨도 함께 할 수 있는 지구촌 사람들이 되자는 외침이었다.
나는 나만의 나이기도 하지만, 우리 속의 나이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바라보자. 글로벌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나와는 다른 너를 인정하고 함께 행복한 우리가 되려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Ref. kia.co.kr/experience-kia/webzine/PopWebzine/webzine_1012/con_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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