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에게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여전히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웃을 자주 ‘조건’으로 구분짓기 때문이다.
나와 친한 사람,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만 가까운 사람.
그 범주를 넘어서면, 우리는 쉽게 외면하고 만다.
하지만 오늘 등장하는 한 사마리아인은 그러한 경계를 가볍게 넘어서 버린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본다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지경에 놓인다.
그 앞을 지나간 사제와 레위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그들은 ‘보고도’ 모른 척 지나친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여건도, 지식도 있었지만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유다인과 앙숙이던 사마리아인은
상처 입은 낯선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으로 피를 닦고,
기름과 포도주로 소독하고, 자신의 노새에 태워 밤을 새워 돌보며 치료한다.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예수님은 복잡하게 말하지 않으신다.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그리고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이 말씀은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을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줄 수 있을까?”로 바꾼다.
즉, 이웃은 관계나 거리가 아니라 선택과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는 주변에서 '길가에 쓰러진 이'들을 많이 마주한다.
경제적 어려움, 심리적 고립, 차별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
용기와 시간, 진심이 필요하니깐 그들에게 다가가는 건 쉽지 않다.
“자비를 베푼 사람이 바로 이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너도 그렇게 하여라.”
자비는 선택이다.
이웃이 되기로 ‘선택’하는 사람,
경계를 넘어서 ‘돌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인간의 품격과 용기를 말해준다.
오늘 하루 실천해볼 작은 자비
✔ 지하철에서 어려워 보이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 회사나 학교에서 유난히 말이 없는 동료에게 따뜻한 인사 건네기
✔ 자신과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마음이 쌓이면, 우리는 점점 이웃이 되는 삶을 배워가게 된다.
#선한사마리아인 #이웃이되다 #자비의삶 #함께사는세상 #작은실천큰의미 #너도그렇게하여라 #오늘도따뜻한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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