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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ːCatholics

[26-2-15] “옛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by David Jeong7 2026.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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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준 속에 살아간다.
법이 있고, 규칙이 있고,
회사에는 사규가 있고 사회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이 정도면 문제 없다.”
“법만 어기지 않으면 괜찮다.”
그런데 오늘의 이야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온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이 시작되는 마음의 자리를 묻는다.

 

화내지 않았지만, 이미 멀어진 마음

 

노여움, 멸시, 무시하는 말투까지도 돌아보라고 한다.
요즘 우리는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손을 대지 않았으니까
  •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까
  •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쉽게 판단하고

쉽게 단정하고 쉽게 무시한다.
댓글 한 줄,
비꼬는 농담 한마디,
“저 사람은 원래 그래”라는 낙인
폭력은 손보다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행동 이전에 이미 시작되는 선택

 

“간음하지 마라”는 말 역시
행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는 시선과 욕망의 자리까지 내려간다.
이건 단지 도덕 규범의 강화가 아니라 인간을 대상화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쓸모, 외모, 스펙, 이미지로 소비한다.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평가가 먼저 이루어지고 존중보다 욕망이 앞서기 쉽다.
진짜 성숙은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맹세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살아라

 

“맹세하지 마라.
‘예’ 할 것은 ‘예’,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우리는 신뢰를 얻기 위해 자꾸 말을 덧붙인다.
“진짜로.”
“내가 장담하는데.”
“맹세코.”
그런데 왜 그 말이 필요할까?
평소의 말이 그만큼 가볍기 때문은 아닐까?
말이 무거운 사람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예’는 분명한 책임이고 ‘아니요’는 분명한 경계이다.
우리는 종종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싫은 부탁에 “예”를 말하고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모호한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모호함은 갈등을 미루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기준을 넘는 의로움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더 나은 의로움’은 더 엄격해지라는 요구가 아니라
더 진실해지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 법을 지키는 사람에서 관계를 지키는 사람으로
  • 겉으로 문제없는 사람에서 마음까지 정직한 사람으로
  • 들키지 않는 사람에서 스스로 떳떳한 사람으로

우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조심하지만 혼자 있을 때의 마음은 잘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사람들 앞의 행동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의 태도이다.

 

오늘 우리의 선택

 

오늘 하루,
화를 내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누군가를 속으로 깎아내리지는 않았는지
선을 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누군가를 도구처럼 보지는 않았는지
큰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작은 진실을 숨기지는 않았는지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행동 이전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
거기서 시작된다.
“옛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어쩌면 이 문장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 각자에게 조용히 건네지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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