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요청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크게 외친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이 질문은 2,000년 전 한 사람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필요한 질문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너무 자주 잊고 사는 질문
현대인의 삶은 바쁘고 복잡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자주 이렇게 된다.
-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 채 일만 하고
- 남의 기대에 맞추다 정작 내 마음은 잃고
- 흐름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하고
- 진짜 갈망보다는 ‘그냥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데 우리가 불안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너는 무엇을 원하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는 것만으로 삶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보려고 하는 사람만이 변화의 순간을 잡는다
눈먼 사람은 군중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음을 받았다.
“너는 조용히 해.”
“네가 뭘 안다고?”
“귀찮게 하지 마.”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외쳤다.
여기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반대와 방해가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 주변에서 “그건 안 돼”라고 말려도 계속 도전하는 사람
-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 기회가 보일 때 끝까지 잡으려는 사람
이들은 ‘소리 지르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이 “그만해”라고 말할 때 한 번 더 외칠 수 있는 사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사는 것들
성서 속 눈먼 사람은 물리적으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눈은 뜨고 있어도 마음의 시력을 잃고 살아간다.
- 중요한 사람을 소중히 보지 못하고
- 감사할 일을 보지 못하고
- 기회를 보지 못하고
- 내 안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 타인의 상처를 보지 못하고
-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보지 못하고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뜨게 해주는 기적’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시력 회복일지 모릅니다.
다시 보게 된 사람처럼: 내 삶도 다시 보게 된다면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 감사했고
- 삶의 길을 새롭게 시작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 나는 지금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을 위해 한 번 더 목소리를 낼 용기가 있는가?
삶은 때때로 ‘다시 보는 순간’에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 우리에게 단 하나의 질문으로 축약된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이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 커리어에서
- 인간관계에서
- 마음 건강에서
- 삶의 방향에서
- 내면의 성장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면 삶의 많은 부분이 다시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오늘 하루만큼은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오늘,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이 당신의 삶에 새로운 시력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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