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저런 사람과 왜 어울려?”
“쟤는 예전에도 그랬잖아.”
“나는 저런 수준의 사람들과는 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마태오, 평범한 이름 뒤의 낙인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 하고 부르신 마태오는 세리였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제국을 위해 세금을 걷는 직업이었고, 동족에게 배신자로 여겨졌다.
사람들 눈에는 '돈만 아는 죄인'으로 보였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다.
그분은 마태오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보다
그가 지금, 어떤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지를 보셨다.
예수님의 식탁엔 '기회'가 차려져 있었다.
예수님은 마태오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바리사이들은 이런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고, 말한다.
“당신 스승은 어째서 죄인들과 식사를 합니까?”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병든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 들 때,
예수님은 치유와 회복의 자리로 그들을 초대하고 계셨던 것이다.
'자비'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형식적 희생이 아니라 자비이다.
다시 말해, 남을 평가하고 드러내기 위한 행동보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품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들 가운데,
어쩌면 ‘마태오’처럼 사회적 낙인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혹은, 우리가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떠올려 본다.
예수님은 그 누구든 함께 식탁에 앉도록 초대하셨고,
우리는 그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
오늘 하루, 나에게 묻는 질문
✔ 나는 누구에게 ‘자비의 시선’을 보내고 있나?
✔ 혹시 누군가를 거리 두며 마음속으로 ‘배척’하고 있지는 않나?
✔ 나 스스로를 세상의 기준으로 죄인이라 여기며 위축된 적은 없었나?
그 어떤 과거도, 낙인도, 하느님의 자비 앞에서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오늘도 누군가를 향한 이해와 초대가 우리의 일상 속 작은 식탁에서 시작되길 바란다.
#마태오의부르심 #자비는힘이다 #식탁의초대 #기회는누구에게나 #회복의식탁 #마음의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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