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는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이 군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와서 말한다.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 가족이 왔다고? 잠시만요.”
그러나 그는 예상 밖의 말을 한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다.”
혈연보다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말한 것이다.
우리는 ‘혈연 중심의 가족’ 너머의 시대에서 산다
예전에는 가족이라 하면 피를 나눈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 혼자 사는 사람
- 원거리 부모와 자녀
- 재혼 가족
- 따로 살지만 여전히 서로를 챙기는 관계
- 직장 동료가 가족 같은 경우
- 취미 모임에서 서로를 위로해주는 사람들
-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삶을 나누는 이들
현대인들은 혈연이 아니어도 마음으로 연결되는 관계를 통해 삶의 큰 부분을 채워 나간다.
어쩌면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에게 ‘가족 같은 존재’는 누구인가?”
가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예수님의 말 속 핵심은 이것이다.
“관계를 결정하는 기준은 혈연이 아니라 ‘함께 뜻을 이루는 일’이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우리를 가족처럼 만들고, 묶고, 연대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지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행동들이다.
✔ 함께 일하고
✔ 함께 고민하고
✔ 함께 버티고
✔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
이렇게 만들어진 관계는 때로는 실제 가족보다 더 깊다.
‘마음의 가족’을 잃어가는 사회,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요즘 대한민국은 ‘고립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의 관계가 단절되는 속도가 빠르다.
- 가족끼리도 대화가 줄고
- 이웃은 얼굴조차 모르고
- 친구 관계는 지치면 끊어지고
- 직장에서는 감정 나누기가 조심스러워지고
관계를 맺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고립과 외로움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오늘 말씀은 조용히 건네는 메시지가 있다.
“당신의 ‘가족’은 피가 아니라 마음으로 찾을 수도 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족 같은 사람 한 명’
우리는 모두 바쁘다.
그래서 관계가 소홀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하루에 단 한 번,
우리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누군가와의 연결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에게 안부 메시지 보내기
- 부모님께 “괜찮아?”라고 먼저 물어보기
-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
- 취미 모임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
- 혼자 살아가는 이웃에게 가벼운 인사 건네기
가족을 새로 만드는 일은 이렇게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오늘 우리의 ‘마음의 가족’은 누구인가?
오늘 혈연의 의미를 줄이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의 마음을 지지해주는 사람,
당신도 그 사람을 지지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이미 가족이다.”
혈연이든 아니든,
우리가 서로의 삶에 작은 선의를 나누고
함께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갈 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형제’, ‘누이’, ‘가족’이 된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가족처럼 따뜻한 한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 한 번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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